행정, 경제의 중심지가 된 서울
행정, 경제의 중심지가 된 서울
그 당시부터 새로 개발할 강남지역에는 금융기능을 옮기는 이런 형태로 3 핵 도시를 구상하게 되고, 사실 그 핵 도시에 부도심을 몇 개로 할 것인가라는 그 뒤로 여러 번 변화가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그렇게 강북의 4대문4대 문 안 지역 전통적인 구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영등포 지역과 강남 지역에 도시 기능을 분산하는, 그러면서 다핵도시를 만드는 그런 형태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그것이 점점 더 확산되면서 서울 주변에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고 위성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수도권 전체적으로 도시 기능이 분산되고, 확산되는 형태로 서울에 20세기 후반에 초거대 도시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중 간단하게 예를 들 수 있는 게 정치, 경제 기능 같은 경우에는 행정, 입법, 사법부가 다 4대 문 안에 모여 있었거든요.
서울의 대도시화 역사
조선시대에는 당연했고 일제강점기에도 아시다시피 행정부는 경복궁 앞에 세워졌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있었고, 입법부는 일제시기는 아예 존재하지는 않았죠, 입법부 자체가. 사법부 법원도 지금의 정동 지역에 서울시립미술관 쓰고 있는 그 건물이죠. 거기에 있었는데, 해방 이후에도 행정, 입법, 사법부는 여전히 4대문 도심부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죠. 조선총독부 청사를 그대로 중앙청으로 행정부의 중심 건물로 썼고, 그다음에 입법부도 그대로 시청 앞 정동에 있는 건물 그대로 썼고, 사법부는 태평로로 이어지는 지금 서울시의회 청사로 쓰고 있는 건물이 초기에 이승만 정권 시기에 입법부였으니까요. 그 건물들이 전부 다 일대의 광화문 거리에서 태평로로 이어지는 이 거리에 다 몰려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물론 그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게 행정부는 일부 정부종합청사를 따로 세우고, 거기도 비좁아서 나중에는 과천에 70년대에 행정도시를 새로 신청사를 만들면서 세우게 되고, 그리고 이게 최근에는 세종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 도시들로 정부 행정부의 기능을 이전하게 되죠. 그런 분산이 이루어지고, 입법부는 아시다시피 국회가 여의도에 건설되죠. 여의도가 박정희 정권에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그리고 사법부는 지금 아시다시피 강남 개발과 함께 지금의 서초동 법원 청사 있는 법조 단지로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 4대문 안에 모여 있던 기능이 그렇게 세 개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 자체가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지는 서울의 대도시화 현상을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요.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서울의 대도시화
같은 맥락에서 경제적인 기능도 예를 들면 일제시기에는 대부분 공장지역이 4대문 안 지역 을지로, 종로, 이런 데 몰려있고, 그다음 동대문 바깥으로 진출했고 용산 지역에 일부 조금 있었고 그랬는데 이것이 도심부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제조업들은 상당 부분 영등포 아니면 동대문 바깥 이렇게 이전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게 나중에 영등포를 부도심으로 하는 공업 지대, 나중에 구로공단과 경인 공업지대로 이어지는 개발이 다 그 영등포의 개발, 일제시기 개발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고요. 그다음 우리가 주로 한국의 주요 대기업 본사나 금융업이나 여러 가지 쇼핑센터, 백화점을 비롯한 번화가 건물들도 원래는 일제강점기에 사실 혼마치라고 불리는 지금 서울의 명동. 그 일대 지역이 중심이었죠. 남대문에서 이어져서 을지로입구로 가는 그 지역 중심으로 해서 대기업 본사들이 가장 많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도 상당 부분 여의도에 금융과 같이 건설되고, 혹은 강남에 본격적으로 테헤란로를 비롯해서 코엑스가 들어서고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상당 부분은 강남 지역으로 이전이 되는 것이죠. 그런 변화가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이 우리가 앞서 교통망의 변화를 통해서 전통 시대의 수은에서 근대 철도, 현대 고속 도시 자동차 도로망, 이런 변화를 말씀드렸는데 그런 교통망을 중심으로 한 도시 공간의 팽창 과정에서 도시의 기능적 분화가 이런 방식으로 공간적으로 변천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