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국의 도시화 진행
해방 이후에 그러면 한국의 도시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했을 때 철도 중심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전체 선로 길이를 따지게 되면 해방 이후에는 일제강점기보다 오히려 약간 줄어듭니다. 예를 들면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게 수인선 협궤열차 같은 게 폐선되었죠. 그런 것들이 일제시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간선교통망으로 활용되던 건데, 해방 이후로 한참 사용되긴 했습니다만 점차 필요가 없어져서 결국은 적자가 누적되면서 나중에 폐선되었다는 걸 알 수 있고요. 그럼 그 지역 간에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요. 수원과 인천을 잇는 지역에 철도 대신 다른 교통이 훨씬 더 유력하게 많이 쓰였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자동차 교통으로의 변화
다시 말하자면 그건 결국 자동차 교통이 훨씬 더 대량으로 원활하게 사람과 물류를 이동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철도가 필요 없어졌다고 볼 수 있고요. 그래서 해방 이후에 한국의 변화는 자동차 교통을 중심으로 도시 간의 네트워크가 완전히 바뀌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해방 이후에 서울의 중요한 변화는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강남 지역을 개발한 것인데요. '강남'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사실 6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강 남쪽이라고 하면 영등포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해서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어지는 철도망의 연결 선상에서, 그러니까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만 한강철교, 용산에서 노량진을 잇는 다리를 통해서 이 철도노선이 있고 거기에 이제 한강 인도교, 제1한강교죠? 그 다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용산과 노량진으로 이어져서 영등포로 이어지는 길이 서울을 남쪽으로 연결 짓는 서울의 대도시화 현상을 만들어낸 공간이었는데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강남이라고 하게 되면 영등포를 잘 떠올리진 않죠.
강남 개발이 이루어진 과정
흔히 강남구 또는 강남 3구에 해당하는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지역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강남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했을 때 전혀 철도와는 별 상관이 없죠. 그럼 강남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그랬을 때 제일 결정적인 하나의 다리를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노래 하나를 듣고 강의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라는 노래인데요. 1979년에 나와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노래입니다. 사실 이 노래 가사를 둘러싼 해프닝도 있는데요. 79년은 아시다시피 유신정권 말기였기 때문에 원래 가사가 그 당시로 봐서는 불온한 점이 있어서 굉장히 건전하게 검열을 통해서 바꾼 해프닝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제3한강교'라는 말, 이게 오늘날에 어떤 다리인지 아시죠? 이게 지금의 한남대교인데요. 다시 말하자면 한남대교가 그 당시 70년대에는 서울의 세 번째 다리였다는 것이고요. 제3한강교가 건설되던 60년대 말 시점만 해도, 다시 말하자면 한강에서 강북에서 강남으로 잇는 다리가 단 2개밖에 없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것은 무슨 말씀이냐 하면, 제가 한강에서 강남과 강북을 잇는 다리가 31개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서울이 해방 이후에 발전하는 과정이라는 것은 결국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30개의 다리를 놓는 과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첫 번째 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제3한강교, 오늘날의 한남대교를 부설하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전에 한남대교가 놓이고 지금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강남 3구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강남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고요. 사실 이게 처음 시작할 때 '남서울 개발계획'이라고 얘기했거든요. '남서울'이라는 말은 결국 무슨 말이냐 하면, 서울이라는 것은 당연히 한강 북쪽에 있는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서울이고, 서울 남쪽에 새로운 서울을 만든다는 개념이고요. 그리고 나중에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할 때도 '영동개발계획'이라고 부르고 지금의 강남을 '영동지구'라고 불렀습니다.
영동지구의 개발
그 당시에는 이 일대가 전부 다 강동구에 해당했거든요. 지금의 서초, 강남, 송파, 강동구 지역이 모두 다 사실은 강동구에 해당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영등포의 '영'자와 강동구의 '동' 자를 결합시켜서 '영동지구'라고 크게 이름을 불렀습니다. 인구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다 합쳐도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하나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지역을 영동지구라고 통칭해서 불렀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영등포 동쪽 지역이라고 해서 그냥 영동으로 부른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이 영동지구 개발계획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오늘날의 강남과 강북, 이 두 지역 인구 1000만을 아우르는 초거대 도시 서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통이라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면, 그럼 강남 지역, 지금의 강남 3구 지역은 일찍 전통시대나 일제강점기에는 왜 개발이 안 되었을까? 왜 도시화가 안 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그게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처음에 조선시대에는 한강 북쪽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졌고요. 그다음에 근대 초기에는 철도를 중심으로 도시화가 되는데, 철도가 관악산을 우회해서 인천 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다 보니까 영등포 지역이 먼저 개발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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