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강남 개발의 역사
해방 이후에 서울에 훨씬 더 많은 인구가 갑자기 밀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강북 지역 혹은 영등포 지역이 혼잡해져서 신도시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강남개발이 되는데, 제일 큰 문제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려면 당연히 교통을 확보해야 되겠죠. 그런데 서울의 구도심 지역과 강남 지역의 연결을 가로막고 있는 제일 큰 것이 남산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강북 도심에서 한남대교로 이어지려면 남산터널을 거쳐야 되죠. 사실 이 강남개발의 신호탄이 된 것은 남산 1호 터널. 지금 남산에 터널 3개가 있습니다만 첫 번째로 만들어진 것이 남산 1호 터널이죠. 남산 1호 터널, 그다음에 제3한강교, 그다음에 경부고속도로. 이렇게 이어지는 교통망이 확보되면서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3가지가 충분히 일관된 계획 하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남산터널 개발
남산 1호 터널은 원래 군사용 벙커로 만들던 것을 나중에 터널로 만들게 되고요.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도 처음부터 계획되어서 연결된 것은 아니고, 따로 계획이 됐다가 연결이 됐다고 하죠. 사실 해방 이후에 서울의 도시화라는 것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이루어진 도시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서울을 굉장히 난개발 된 도시라고 얘기하는데요. 실제로 해방 이후에 보게 되면 여전히 철도 중심으로 서울을 발전시키고 강북 중심으로 서울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계획을 계속 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강남 개발이 막 이루어지면서 자동차 교통 중심으로 돌연 급전환한 흔적들을 지금도 사실 군데군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좀 더 기회가 되면 상세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굉장히 급작스럽게 강남개발이 자동차 교통망과 함께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남 개발의 계기가 된 교통망 - 강남 고속터미널
하나의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는 게 강남 고속터미널인데요. 과거에 철도 중심일 때는 당연히 서울역이 가장 서울의 중심적인 광역 교통의 허브였는데요. 이것을 자동차 중심으로 재편하고 경부고속도로를 놓으면서 경부고속도로를 활용하는 전국 대중교통망으로 고속버스라는 것을 하나의 터미널로 결집시킬 필요가 있어서 70년대 중반에 지금의 반포 쪽에 고속터미널을 다 모아서 거기를 만들자고 하게 되죠. 사실 그 전에는 시외버스, 고속버스터미널이 서울 각 지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이것을 하나로 강제로 통합시킨 것이 유신정권기에 강력한 정치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권에서 가능했을 텐데요. 그래서 75년도에 그게 지금의 반포터미널로 확정이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서울역 근처 봉래동에 만들려고 하다가 강남 개발이 되면서 갑자기 여기로 옮겨왔다는 것도 우리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강남 개발의 계기가 된 교통망 - 지하철 2호선
중요한 강남 개발의 계기가 된 교통망으로 볼 수 있는 게 지하철 2호선이죠. 지하철 2호선은 다른 나라들의 국제 비교사례를 통해서 보면 굉장히 이례적인 지하철 노선에 해당합니다. 대개 세계 어느 나라나 대도시들 같은 경우를 보면 도심지를 중심으로 해서 도심을 교차점으로 하는 방사상의 지하철이 먼저 건설된 다음에 나중에 주변부 지역을 잇는 순환선 교통망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하철 1호선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즉 다시 말하자면 영등포에서 청량리를 잇는 지하철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거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어마어마하게 긴 순환 지하철망을 2호선 두 번째 노선으로 만들었는데요. 그래서 흔히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긴 순환구간이라고 얘기합니다. 1978년도에 착공해서 전체 구간이 완공된 건 1984년인데요.
강남개발의 본격화
지금 우리가 제일 2호선 중에서 노른자의 땅이라고 하는 테헤란로, 강남, 역삼, 선릉, 삼성 이어지는 구역이 처음 개통될 때만 해도 논밭이 있던 동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그 강남 지역을 테헤란로라고 부르는데, 77년도에 이란의 테헤란시하고 자매결연을 맺고 이란의 서울로를 만들면서 여기에 테헤란로를 만들었는데, 원래는 삼릉로에 해당하는 곳이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이란이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 도시 이름을 여기에 붙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 이후에 OECD에 가입한 반면에 이란은 굉장히 테러국가로 낙인 찍혀서 그 뒤로 오히려 국가가 굉장히 쇠퇴하게 됐으니까 아이러니한 명칭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강남 개발, 다리를 놓게 되고, 지하철 망을 구축하면서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도시, 서울 역사, 세계 도시 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발전에서 철도의 중요성 (0) | 2022.07.25 |
---|---|
서울에서 축산물 시장의 이동 역사 (0) | 2022.07.25 |
종속이론의 등장배경과 비판 (0) | 2022.07.24 |
전통시대 서울의 이해 (0) | 2022.07.24 |
20세기 서울의 근대화와 역사 (0) | 2022.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