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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서울 역사, 세계 도시 이론

소비문화 변천사를 통해 본 서울의 초거대도시화

소비문화 변천사를 통해 본 서울의 초거대도시화

소비문화 변천사를 통해 본 서울의 초거대도시화
소비문화 변천사를 통해 본 서울의 초거대도시화

20세기 서울의 대도시화 과정에서 서울이 공간적으로 팽창하면서 서울의 도심부에 집중돼 있던 정치, 경제적인 기능이 어떻게 외곽 지역으로 분산되었는가에 대해서 설명드렸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서울의 소비, 문화 기능 또한 공간적으로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이번 시간에 공부해보려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지금 서울 사람들이 제일 많이 놀러 가는 곳. 가족들이 많이 놀러 가는 곳, 혹은 어린이들이 즐겨 가는 곳 하면 아마 과천 서울대공원이나 혹은 조금 멀리 간다면 용인 에버랜드 이런 곳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공원이나 위락시설이 20세기 서울의 변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했을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는데요. 사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서울의 공원이라고 하는 게 최초의 공원은 일반적으로 파고다 공원을 들고 혹은 독립공원, 지금 독립문 있는 일대에 만든 공원이 제일 서양식 모델로 우리 스스로 만든 최초의 공원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요. 그런 공원이 있었습니다.

창경원의 역사

사람들이 즐겨 가는 도심부의 공원으로 위락시설로 제일 첫 번째로 자리 잡은 곳은 사실 창경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경원은 1970년대까지도 서울 시민들이 제일 즐겨 가는 장소였는데요. 물론 이 형성사는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사의 관점에서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죠. 조선 왕조의 왕궁이었던 창경궁을 일본이 격하시켜서 거기에 동물원, 식물원을 설치하고 놀이기구까지 만들어서 공원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불쾌하게 느꼈고, 그래서 나중에 이 창경원을 지금 창경궁으로 복원하면서 창경원에 있던 여러 가지 놀이공원 시설들을 옮겨서 서울대공원을 만들게 되죠. 83년도에 창경궁 복원이 결정되면서 84년도에 과천 서울대공원이 개장되는 것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인데요. 그래서 사실 서울대공원이 84년도에 개장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서울이 굉장히 큰 대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의 놀이시설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 이전까지는 4대 문 안에 있는 창경원이 거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주된 공간이었다가 과천으로까지 넘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큰 서울의 팽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사실 그 중간 단계에서 73년도에 어린이대공원, 지금 광진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이 만들어지죠. 그래서 우리가 이 놀이공원의 역사를 통해서도 일종의 서울시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급속한 초거대 도시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단계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창경원이 60년대, 70년대 초까지는 거의 유일한 서울의 위락시설이었다가 이게 73년도에 어린이대공원이 만들어지고, 같은 시기에 74년도에 용인 한국민속촌, 그다음에 76년도에 용인 자연농원도 만들어집니다. 그렇지만 그 공간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에버랜드와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그때부터 굉장히 놀이시설이 규모로 서울시의 팽창을 볼 수 있고, 결국 80년대에 본격적인 의미에서 서울대공원이 개장되고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복원되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 이런 것을 통해서 80년대부터 대중 소비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는구나, 대형 놀이공원과 테마파크의 시대가 열리는구나.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대공원 시설

84년에 과천 서울대공원이 개장하는데 우리가 주로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서울랜드라는 놀이기구가 집중된 시설이 88년에 개장되고요. 그다음에 89년도에 잠실에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만들어지고, 그 바로 전인 87년에 강북구 번동에 드림랜드가 만들어지거든요. 지금은 그게 2009년부터 북서울 꿈의 숲이 되었는데요. 낙후된 시설이 되어서 더 이상 운영되지 못해서 그런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런 변화의 단계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서울시가 차츰차츰 공간적으로 팽창하면서 또 동시에 사람들의 소비의 취향이나 소비 시장의 규모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를 그런 가족단위의 공원 시설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80년대에 조금 전에 이런 전반적인 드림랜드나 서울랜드나 롯데월드 이런 것들이 80년대 후반에 주로 다 만들어졌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메가 이벤트들과 서울의 모습 변화

제가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86, 88의 시대라고 우리가 주로 80년대를 불렀는데 그게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 대대적인 경관의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죠. 1980년대는 그래서 올림픽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시대인데, 이 시기가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이 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서 굉장히 서울의 경관 변화, 특히 해외에 내놓아서 부끄럽지 않은 국제도시의 면모를 보여야 된다고 해서 전 국민적인 캠페인을 하면서 서울시의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전국민적인 운동이 정부 주도로 있었는데요. 그 뒤로도 우리가 메가 이벤트를 경험합니다만, 어쨌든 그것이 서울의 경관 변화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단순히 경관 변화뿐만 아니라 서울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는 도시에 대한 감수성, 도시적인 삶의 멘탈리티, 이런 것들을 바꾸는 데도 아주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시기가 이 80년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80년대에 이런 올림픽을 계기로 한 도시 개발의 드라이브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게 전두환 정권이 정책을 잘 써서라기보다는 사실 국제적인 배경이 있죠. 소위 3저 호황이라고 해서 80년대 중반에 금리, 환율, 유가 이 세 가지가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돼서 해외의 수출 지향형인 한국 산업이 굉장히 성공적일 수 있었던 호조건이, 굉장히 좋은 조건이 대외적으로 마련되었던 시기이죠. 그래서 흔히 80년대 중반 한 3, 4년을 기간을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경험한 시기였다. 이렇게 부르는데요.

88 올림픽과 서울의 변화

그런 한국 경제의 굉장히 비약적인 성장이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88 올림픽이라는 것이, 또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과도한 재정적인 투자나 도시개발이 큰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소득 수준도 상당히 올라가게 되고, 생활수준도 올라가고 그래서 우리 도시민들의 한국 도시문화의 변천사라는 맥락에서 봐서도 80년대에 큰 변화가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외식 문화, 외식 산업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생성되기 시작한 것도 80년대의 일입니다. '~가든'이라고 불리는, 사실 가든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인데 전원 갈빗집,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생겨난 것도 이 시기부터의 일이고요. 또 우리가 흔히 요즘 접하는 패스트푸드점도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고요. 또 역으로 우리가 흔히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여름철에 자주 먹던 보신탕, 이런 것이 외국 사람들 보기 정말 부끄러운 문화라고 해서 단속되면서 골목 뒤로 숨게 된 것. 이런 것들도 이때부터입니다.